금요일 저녁 9시 45분 강남역 10번 출구. 퇴근 후 넥타이를 느슨하게 푼 직장인들이 삼삼오오 모여 걸어간다. 목적지는 하나같이 같은 방향. 불과 15분 후면 이 골목의 업소들은 발 디딜 틈 없이 붐빌 것이다.
"오늘 예약했어?" "당연하지. 지난주에 그냥 갔다가 2시간 기다렸잖아." 30대 중반의 대기업 과장들의 대화다. 불경기라는 뉴스가 연일 헤드라인을 장식하지만 이 순간만큼은 그런 우울한 현실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불경기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금요일 밤
대한민국 경제가 어렵다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자영업자들은 임대료를 걱정하고 제조업은 수출 부진에 신음한다. 대기업들도 구조조정 얘기가 나온다. 그런데 묘한 현상이 있다. 강남 유흥업소만큼은 금요일이면 여전히 만원이다.
논현동의 한 룸살롱 실장 김 씨는 이 현상을 이렇게 설명한다. "경제가 어려울수록 사람들은 위안을 찾아요. 스트레스가 극에 달하면 뭔가 해소할 곳이 필요하거든요. 그게 우리 업소가 되는 거죠."
스트레스 해소의 유일한 출구
실제로 최근 3개월간 금요일 매출을 분석해보면 오히려 작년 같은 기간보다 15% 증가했다. 평일은 확실히 줄었지만 금요일만큼은 오히려 늘어난 것이다.

35살 IT 개발자 최 씨는 "예전엔 그냥 가서 들어갔는데 요즘은 일주일 전에 예약해야 원하는 시간에 갈 수 있다"며 변화를 실감한다고 말한다. 이런 현상이 생긴 이유는 복합적이다.
보상 심리의 발현
심리학자 박 교수는 이를 '보상 심리'로 해석한다. "일주일 내내 절약하고 참았던 욕구가 금요일 밤에 폭발하는 거예요. '이번 주도 고생했으니 오늘만큼은' 하는 자기 합리화가 작동하죠."
왜 불경기에도 금요일 밤 업소는 붐빌까? 전문가들은 몇 가지 이유를 제시한다. 집중 소비 현상 보상 심리 사회적 압력 현실 도피 그리고 관계 유지 욕구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12시의 전쟁: 예약과 웨이팅의 현실
"죄송합니다. 지금 대기가 1시간 정도 되는데요." 금요일 밤 11시 30분 역삼동의 한 텐프로 입구. 이미 20팀이 넘는 손님들이 대기 중이다. 자정이 가까워질수록 대기 시간은 더 길어진다.
"12시 넘으면 거의 2시간은 기본이에요. 그래도 기다리는 분들이 많아요." 이 업소의 매니저는 금요일만큼은 예약이 필수라고 강조한다. 실제로 인기 있는 업소들은 목요일부터 금요일 예약이 차기 시작한다.
웨이팅 시간의 증가
이런 현상이 생긴 이유는 복합적이다. 첫째 전체 업소 수가 줄어들었다. 코로나 이후 폐업한 곳들이 많아 선택지가 줄었다. 둘째 평일 손님이 줄어들면서 업소들이 금요일과 주말에 집중하는 전략을 택했다.
셋째 젊은 층이 유입되면서 금요일 수요가 더욱 집중됐다. 20대 후반~30대 초반의 젊은 직장인들이 주요 고객층으로 자리 잡으면서 금요일 밤 집중 현상이 더욱 심해졌다.
예약 시스템의 변화
업소들도 금요일에 맞춘 특별 전략을 구사한다. 첫째 '해피아워' 도입이다. 7~8시 사이 입장 손님에게 30% 할인을 제공한다. 조기 입장을 유도하는 전략이다.
둘째 '금요일 이벤트'다. 룰렛 이벤트 럭키드로우 등으로 재미를 더한다. 당첨되면 샴페인 서비스나 룸 업그레이드를 제공한다. 셋째 '테마 파티'로 매주 금요일마다 다른 테마를 정한다.

초이스의 경제학과 새로운 시스템
유흥업소의 불문율이 있다. '먼저 온 손님이 좋은 파트너를 만난다'는 것이다. 저녁 8시에 도착한 손님과 11시에 도착한 손님이 만날 수 있는 매니저의 수준은 확연히 다르다. 인기 있는 매니저들은 일찍 '마감'되기 때문이다.
"8시에 오시면 30명 중에 고르실 수 있는데 11시면 5명 남을까 말까예요. 그마저도 신입이거나 인기 없는 분들이죠." 한 마담의 솔직한 설명이다.
시간대별 초이스 변화
실제로 금요일 저녁 시간대별 초이스 가능 인원을 보면 8시 100% 9시 70% 10시 40% 11시 20% 12시 이후 10% 미만으로 급격히 감소한다.
이 때문에 일부 손님들은 회사에서 일찍 자리를 뜬다. "금요일은 오후 6시에 칼퇴해요. 7시까지 집에서 씻고 8시에 업소 도착. 이게 골든타임이죠." 40대 사업가 이 씨의 루틴이다.
VIP와 SC 시스템
최근 강남 고급 업소들은 새로운 시스템을 도입했다. 바로 'SC(슈퍼초이스)' 제도다. "VIP룸을 예약하시면 시간 관계없이 모든 매니저 중에서 먼저 선택하실 수 있습니다."
일반 룸의 3배 가격을 내면 초이스 우선권을 갖는 시스템이다. 돈으로 시간의 불리함을 극복하는 것이다. 청담동의 한 최고급 룸살롱은 이 시스템으로 큰 성공을 거뒀다. "SC 제도 도입 후 VIP룸 예약이 300% 증가했어요."

변화하는 손님 문화와 시간대별 풍경
금요일 밤 강남 업소에는 다양한 군상이 모인다. 스트레스 해소형 비즈니스형 외로움 해소형 과시형 그리고 습관형까지. 각각 다른 목적과 패턴을 갖고 있다.
시간이 흐르면서 업소의 분위기도 계속 변한다. 7시의 한산함에서 시작해 10시의 절정을 거쳐 새벽 3시의 마무리까지 각기 다른 매력을 보여준다.
진상에서 친구로: 달라진 손님들
"요즘 손님들은 정말 많이 변했어요. 예전 같은 진상은 거의 없어요." 10년차 매니저 수연 씨의 말이다. 과거엔 술 강요 과도한 스킨십 막말 등이 일상이었다면 최근엔 상당히 매너 있는 손님들이 늘었다는 것이다.
이런 변화의 배경엔 여러 요인이 있다. 미투 운동 이후 성 인식이 개선됐고 젊은 층이 유입되면서 수평적 문화가 자리 잡았다. SNS 시대에 평판 관리가 중요해진 것도 한몫했다.
금요일 밤 시간대별 변화
금요일 저녁 7시는 아직 한산하다. 일찍 퇴근한 소수의 손님들만 있다. 분위기는 차분하고 서비스도 여유롭다. 8시가 되면 본격적으로 손님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넥타이를 푼 직장인들이 삼삼오오 모여든다.
10시가 절정의 시간이다. 모든 룸이 가득 차고 복도까지 사람으로 붐빈다. 초이스는 거의 불가능하고 대기 시간이 1시간을 넘는다. 새벽 2시가 되면 슬슬 마무리 분위기지만 여전히 절반 이상의 룸이 가동 중이다.

금요일 특수의 미래와 현명한 이용법
앞으로도 금요일 밤 특수는 계속될까? 업계 전문가들의 의견은 엇갈린다. 긍정론자들은 "인간의 유흥 욕구는 사라지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부정론자들은 "MZ세대의 가치관 변화"를 지적한다.
절충론자들은 "진화와 적응"을 말한다. 전통적인 룸살롱 형태는 줄어들겠지만 새로운 형태의 엔터테인먼트 공간으로 진화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업소들의 전략과 미래 전망
손님들에게 금요일이 해방의 날이라면 직원들에게는 전쟁의 날이다. "금요일은 정말 지옥이에요. 쉴 새 없이 뛰어다녀야 해요." 웨이터 3년차 김 씨의 하소연이다.
하지만 수입 면에서는 금요일이 최고다. 팁도 많이 나오고 매출 인센티브도 크다. "힘들어도 금요일 하루가 평일 3일치예요." 일부 직원들은 금요일만 일하는 '프리랜서'로 전환하기도 한다.
현명한 금요일 밤 보내기
15년간 이 업계를 지켜본 필자로서 몇 가지 조언을 하고자 한다. 첫째 예약은 필수다. 특히 금요일은 더욱 그렇다. 목요일까지는 예약하는 것이 좋다. 둘째 시간을 잘 선택하라. 8시 입장이 골든타임이다.
셋째 예산을 정하고 가라. 금요일 밤은 쉽게 흥분하기 쉽다. 미리 한도를 정하고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넷째 매너를 지켜라. 종사자들도 사람이다. 존중하고 배려하는 마음을 가져야 좋은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금요일 밤 10시의 강남. 불경기 속에서도 여전히 붐비는 이곳은 한국 사회의 단면을 보여준다. 한편으로는 스트레스 사회의 어두운 그림자다. 일주일의 고단함을 술과 유흥으로 달래야 하는 현실.
다른 한편으로는 인간적인 욕구의 발현이다. 즐기고 소통하고 해방감을 느끼고 싶은 본능. 중요한 것은 균형이다. 일과 여가 절제와 해방 현실과 도피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을 찾는 것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