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3시 강남역 뒷골목. 한 유흥업소 앞에서 20대 청년이 담배를 피우며 한숨을 내쉰다. 오늘도 12시간 근무를 마친 헬퍼 김 모 씨다. "형들 담배 사오고 방 청소하고 쓰레기 치우고... 오늘도 발바닥에 불났네요." 그의 휴대폰에는 웨이터들의 카톡이 쉴 새 없이 울린다. '303호 재떨이 비워줘' '얼음 더 가져와' '화장실 휴지 떨어졌대'.
강남 유흥가 헬퍼의 현실
새벽 3시 헬퍼의 일상
불과 3개월 전 군 제대 후 돈이 급해 시작한 일이었다. "시급 15,000원이면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죠. 편의점보다 훨씬 많으니까."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새벽 내내 뛰어다니며 온갖 잡일을 하는 것은 예상했지만 이렇게까지 힘들 줄은 몰랐다.
오후 8시 헬퍼의 하루가 시작된다. 먼저 각 룸을 청소하고 기본 세팅을 한다. 컵 얼음 물수건 담배재떨이 등을 준비한다. 9시가 되면 손님들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이때부터 헬퍼는 쉴 새 없이 움직인다. 웨이터가 부르면 바로 달려가야 한다. "얼음 떨어졌어!" "맥주 더 가져와!" "303호 치워!"
담배 심부름도 헬퍼의 몫이다. "말보로 레드 하나 사와"하면 5분 안에 다녀와야 한다. 편의점이 멀면 뛰어야 한다. 비가 와도 눈이 와도 예외는 없다. 새벽 2시쯤 되면 취한 손님들이 하나둘 토하기 시작한다. 이것도 헬퍼가 치운다. "형 201호 토했대. 빨리 가봐." 방독면이라도 쓰고 싶은 순간이지만 묵묵히 청소도구를 들고 간다.
새벽 4시 손님들이 빠지기 시작하면 본격적인 청소가 시작된다. 수십 개의 룸을 모두 청소해야 한다. 카펫 청소 쓰레기 분리수거 화장실 청소까지. 아침 7시가 되어서야 퇴근한다. 11시간 동안 앉아본 시간이 30분도 안 된다. 집에 가면 바로 쓰러져 잔다. 그리고 저녁에 다시 출근한다. 이것이 헬퍼의 일상이다.
구인난의 실태
"헬퍼 구합니다. 시급 15,000원~20,000원. 성실한 분 우대." 강남 일대 유흥업소 구인 사이트를 보면 이런 공고가 365일 올라와 있다. 매니저나 아가씨 구인광고보다 오히려 헬퍼 구인광고가 더 많다.
논현동에서 10년째 룸살롱을 운영하는 박 대표는 "헬퍼 구하는 게 제일 어렵다"고 토로한다. "아가씨들이야 마담이 알아서 구해오고 웨이터도 소개로 들어오는데 헬퍼는 정말 구하기 힘들어요. 시급을 올려도 보너스를 줘도 일주일 못 버티고 나가는 애들이 태반이에요."
실제로 강남 유흥업소의 헬퍼 이직률은 70%가 넘는다. 10명을 뽑으면 3명만 한 달을 버틴다는 얘기다. 이는 편의점 아르바이트 이직률(30%)의 두 배가 넘는 수치다.
유흥업소의 위계구조와 헬퍼의 위치
복잡한 서열 체계
유흥업소의 직원 구조를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단순히 매니저(아가씨)와 웨이터만 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는 복잡한 위계구조가 존재한다. 최상층에는 사장과 실장이 있고 그 아래 마담과 영업진이 있다. 서빙 파트에서는 웨이터장(부장) - 웨이터 - 헬퍼 순의 서열이 명확하다.
웨이터장은 말 그대로 웨이터들의 우두머리다. 근태 관리는 물론 신입 교육 업무 배분까지 총괄한다. 대신 웨이터들이 받는 팁(꽁비)의 일정 부분을 받는다. 보통 전체 팁의 20~30%를 가져간다.

웨이터는 직접 손님을 응대하고 술을 서빙한다. 손님과 대화도 나누고 분위기도 띄운다. 잘하는 웨이터는 손님들에게 직접 팁을 받기도 한다. "형 오늘 고생했어"하며 10만 원짜리 봉투를 쥐여주는 손님도 있다.
헬퍼의 업무 범위
그런데 헬퍼는? 이들은 유흥업소의 '보이지 않는 손'이다. 손님 눈에는 잘 띄지 않지만 이들이 없으면 업소가 돌아가지 않는다. 헬퍼의 업무는 방대하다. 룸 청소와 기본 세팅부터 시작해 얼음과 술 보충 담배 심부름 토사물 청소 쓰레기 정리까지 모든 잡일을 도맡는다.
"군대보다 서열이 엄격해요. 까라면 까야 하고 대들면 바로 잘려요. 자존심 상하죠." 한 전직 헬퍼의 고백이다. 웨이터들에게 무시당하고 욕을 듣는 것은 일상이다. "야 헬퍼! 뭐해? 빨리 안 와?" 이런 말을 하루에 수십 번 듣는다.
헬퍼의 수입과 현실적 한계
실제 수입 구조
"시급 15,000원이면 하루 11시간 한 달 25일 일하면 400만 원 넘게 벌잖아?" 숫자상으로는 맞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우선 매일 출근하기 힘들다. 체력적으로 불가능하다. 보통 주 4~5일 일한다. 그러면 월 250~300만 원 정도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식대 교통비는 본인 부담이다. 새벽에는 대중교통이 없어 택시를 타야 한다. 하루 택시비만 2~3만 원. 한 달이면 60만 원이 넘는다. 게다가 실수하면 월급에서 깎인다. 술병을 깨뜨리면 원가 배상 손님 물건을 잃어버리면 변상. "지난달에 돔 페리뇽 깨뜨려서 50만 원 물었어요. 그 달은 거의 공짜로 일한 거죠." 한 헬퍼의 씁쓸한 경험담이다.
반면 웨이터는 기본급에 팁까지 더해 월 500만 원 이상 버는 경우가 많다. 웨이터장은 700만 원을 넘기도 한다. 같은 공간에서 일하지만 수입 차이는 2~3배다.

30%만 살아남는 이유
통계적으로 30%만이 3개월 이상 버틴다. 1년을 채우는 건 10%도 안 된다. 왜 이렇게 많이 그만둘까? 첫째는 체력적 한계다. 매일 11시간씩 서서 일하는 것은 20대 청년에게도 버겁다. "첫 주는 진짜 지옥이었어요. 발이 너무 아파서 집에 가서 발 마사지기 사려고 했어요." 헬퍼 2주 차에 그만둔 김 모 씨의 경험이다.
둘째는 감정노동이다. 셋째는 불규칙한 생활 패턴이다. 낮밤이 바뀌니 건강이 나빠진다. 친구들과도 시간이 안 맞아 만나기 힘들다. 연애는 꿈도 못 꾼다. "여자친구가 헤어지자고 했어요. 맨날 새벽에 들어오고 주말에도 못 만나니까. 일 그만두든지 나랑 헤어지든지 선택하래요." 결국 일을 선택한 25살 정 모 씨. 지금은 후회한다고 한다.
그럼에도 헬퍼를 하는 이유는 뭘까? 24살 이 모 씨는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고 말한다. "고졸이고 특별한 기술도 없어요. 편의점은 월 200도 안 되고 공장은 지방 가야 하고... 그나마 여기가 돈을 많이 주니까요." 또 다른 이유는 '웨이터로의 승진 가능성'이다. 헬퍼를 1년 정도 하면서 인정받으면 웨이터가 될 수 있다. 웨이터가 되면 수입이 2배 이상 늘어난다.
업계의 변화와 개선 노력
처우 개선 시도들
업주 입장에서도 답답하다. 시급을 올려도 복지를 개선해도 헬퍼는 늘 부족하다. "예전엔 시급 1만 원이면 줄 섰어요. 지금은 2만 원 줘도 안 와요. 인건비 부담이 장난 아니에요." 청담동에서 하이엔드 룸살롱을 운영하는 최 대표의 하소연이다.
일부 진보적인 업소들은 헬퍼 처우 개선에 나서고 있다. 강남의 한 대형 룸살롱은 '헬퍼 정규직 전환' 제도를 도입했다. 3개월 수습 후 정규직으로 전환하면 4대 보험은 물론 퇴직금 연차휴가까지 보장한다. "처음엔 비용 부담이 컸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이득이에요. 숙련된 헬퍼가 오래 일하니 서비스 질도 올라가고 교육 비용도 줄어들죠." 해당 업소 인사 담당자의 설명이다.
또 다른 업소는 '헬퍼 인센티브제'를 도입했다. 매출이 일정 수준을 넘으면 헬퍼들에게도 보너스를 지급한다. "동기부여가 확실히 되더라고요. 열심히 일하면 더 받을 수 있다는 희망이 생기니까." 일부는 근무 환경 개선에 투자한다. 헬퍼 전용 휴게실을 만들고 식사를 제공하며 유니폼도 세련되게 바꿨다.
자동화와 미래
일각에서는 '자동화'가 해법이라고 주장한다. 실제로 일부 업소는 서빙 로봇을 도입했다. "로봇이 술이랑 안주 나르고 빈 병 치우고. 헬퍼 3명분의 일을 하더라고요." 로봇을 도입한 한 하이퍼블릭 대표의 평가다.
하지만 한계도 명확하다. 로봇은 담배 심부름을 할 수 없고 토사물을 치울 수도 없다. 무엇보다 '인간적 터치'가 없다. "손님이 '수고해'라고 하면 '감사합니다' 하고 인사하는 게 서비스업의 기본이에요. 로봇이 그걸 할 수 있나요?" 한 웨이터장의 지적이다.
MZ세대는 워라밸을 중시한다. 돈보다 삶의 질이 우선이다. 아무리 돈을 많이 줘도 새벽까지 일하는 건 거부감이 든다. 실제로 20대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월 400만 원 헬퍼'와 '월 250만 원 사무직' 중 선택하라고 하면 70%가 후자를 선택한다. SNS의 영향도 크다. "인스타에 올릴 수 없는 직업은 하기 싫어요. 친구들한테 헬퍼 한다고 말하기 창피하잖아요." 23살 대학생의 솔직한 답변이다.

헬퍼 문제의 본질과 미래
현직 헬퍼들은 이렇게 조언한다. "정말 돈이 급한 게 아니면 다시 생각해보세요. 편의점이나 카페가 돈은 적어도 몸은 덜 힘들어요." "하려면 목표를 확실히 하세요. 웨이터 되겠다 1년만 하고 창업 자금 모으겠다 이런 목표가 있어야 버텨요." "체력 관리가 제일 중요해요. 퇴근하고 술 먹으면 안 돼요. 규칙적으로 운동하고 영양제 먹고. 그래야 버텨요."
헬퍼 구인난은 단순한 인력 부족 문제가 아니다. 유흥업계 전체의 구조적 문제가 응축된 현상이다. 열악한 노동 환경 사회적 편견 세대 간 인식 차이 산업의 음지화 등 복합적 요인이 작용한다. 시급을 올리는 것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근본적 해결을 위해서는 산업 전체의 체질 개선이 필요하다. 노동 환경 개선 사회적 인식 변화 합법적 테두리 안에서의 운영 등이 선행되어야 한다. 20대 청년들에게 헬퍼는 '돈은 되지만 하고 싶지 않은 일'이다. 이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기도 하다.
만약 정말 헬퍼를 시작한다면 명확한 목표와 철저한 계획을 세우길 바란다. 그리고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건강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길 바란다. 헬퍼는 평생 직업이 아니다. 잠시 거쳐가는 과정일 뿐이다. 그 과정에서 무엇을 얻고 어디로 갈 것인지 명확히 하자. 그래야 이 힘든 시간이 의미 있는 경험이 될 수 있다.
강남 유흥가의 화려한 네온사인 뒤에는 오늘도 묵묵히 일하는 헬퍼들이 있다. 그들이 없다면 화려한 밤문화도 없다. 하지만 그들은 여전히 그림자 속에 있다. 이것이 2025년 대한민국 유흥업계의 현실이다.